바운티 호의 반란 2
1962년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인공 역할은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가 맡습니다 말론 브랜도라면 전 세계가 유명한 괴짜이고 거물급 배우로 유명한 아주 독특한 인물입니다.
1924년생이니까 나이는 따져보면 쉽게 나오죠. 아버지는 살충제 제조업을 하셨고, 어머니가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 시의 플레이하우스 소속 연극배우여서 그런지 연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어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어머니의 꿈을 이어받아 배우가 되기 위해 뉴욕의 연극학교에 입학했고 거기서 그는 엘리아 카잔 감독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스탠리 코왈스키 역을 맡아 브로드웨이 연극가에서 대성공을 거두죠. 나중에 그는 같은 이름의 영화에 나오면서 다시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한때 그는 잘못된 처세술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기도 했어요. 아라비아의 로렌스 내일을 향해 쏴라 같은 뛰어난 명작 영화의 배역을 거절했다가 영화계에서 버림받은 거죠.
들어오는 배역도 없이 사람들에게서도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한 그가 마리오 푸조의 유명한 소설 대부(The Godfather)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하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을 찾아가 주연 배우로 기용해 달라고 호소했다. 자기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역할이라는 거죠
자기 돈 들여 스크린 테스트를 보고 출연했는데, 이 영화는 정말 대단한 히트를 치며 극적인 재기를 일으킵니다. 이 영화로 그는 다시 한 번 세계적인 배우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겁니다.
"1973년 3월 28일 열린 제4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는 남우주연상 수상을 거부합니다" 인디언 학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인디언으로 분장한 소녀에게 수상거절 이유를 적은 종이를 들려주고, 나는 타히티에서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말론 브랜도는 그런 배우입니다
<영화 슈퍼맨의 한 장면 - 출처 : 구글> 그의 이름 값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1978년 개봉한 영화 슈퍼맨을 촬영했을 때죠. 슈퍼맨의 아버지인 말론 브랜드가 잠시 얼굴을 비췄습니다. 크립톤 행성의 리더로서 전반에 잠시 나오는데 영화에 그가 나온 장면은 불과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입니다. 실제 촬영에 걸린 시간도 12일뿐이었다고 한다.그 때 그가 받은 출연료는 고작 350만달러였어요 요즘 환율로 환산하면(1달러=1100원) 약 40억원에 이르는 거액입니다. 20년쯤 전의 돈이니까 얼마나 큰 돈인지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일당으로 따지면 3억원 이상이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큰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대부>의 대성공으로 인해 거물급 스타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출연한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 1951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1952년: <혁명 아사파타> ○ 1953년: <줄리어스 시저> ○ 1954년: <워터프런트> -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 1958년: <젊은 사자들> ○ 1962년: <바운티호의 반란> ○ 1972년: <대부> -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 1978년: <젊은 사자들> <파리고> ○ 1978년: <잠자> ○ 1972년: <파리고> <대부>
<영화 - 워터프런트 포스터 - 출처 : Google> 어느 것 하나 재미없는 영화가 없습니다.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대부분의 작품은 봐도 좋지만, 단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만은 곤란합니다. <바운티호의 반란>을 촬영할 때도 잘 들렸어요. MGM사에서는 회사의 운명을 건 영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주연 배우가 계속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루이스 마일스톤과 캐롤 리드의 공동 연출로 촬영이 이뤄졌는데 말론 브랜드가 고집을 부려 캐롤 감독을 내쫓은 일이 벌어졌어요.MGM사에서는 '벤허'의 뒤를 이을 대작으로 이 영화를 기획하여 촬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영화가 70mm 와이드스크린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타히티에서 우기에 촬영이 시작돼 문제의 소지가 생겼습니다. 게다가 주연배우가 멋대로 연기를 수정하고 감독과 다투는 바람에 촬영 기간도 원래 6개월에서 13개월로 늘어났고 제작비도 3배가 더 들어 결국 2천만달러를 쓰게 됐습니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꽤 골치 아픈 문제의 덩어리 영화가 된 것입니다.
브랜드는 조지 시튼 감독을 포함한 2명의 감독을 내쫓은 셈이 돼 인간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전 세계에 알리게 돼버렸습니다."위대한 스타라고 해도 행동이 서투를 때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다행히 재기했으니 다행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인간 망종으로 끝날 뻔했습니다.
주연배우의 이런 행동 때문에 이 영화는 3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철저히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바운티호의 반란>은 아카데미 작품상, 촬영상, 미술상, 필름 편집상, 특수 효과상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어느 것 하나 수상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좌절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주연배우의 망신스러운 언행 때문에 빚어진 일은 아니었다고 해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겠죠.
아리바리


